습작에 졸작. 봄이야기. 봄가뭄. 6

..상황. ..상황. ㅇㅇㅇㅇ번지 ㅇㅇ모텔 옆 신속출동 바람. 신고자 연락처 XXXXXXX..

그곳은 주점들과 클럽, 그리고 모텔들이 빼곡히 들어찬 그런 곳이었다. 출렁이는 가슴을 한껏 치켜든 여자들과 운동으로 다져진 가슴팍을 활짝 펼친 남자들. 지나는 아가씨들을 질펀하게 쳐다보는 사이좋은 남정네들과 구토물 냄새가 어우러지는 그런 곳. 미간을 한껏 찌푸린 신고자는 문신이 화려한 팔뚝을 겹쳐 팔짱을 끼고는 왜 이리 늦게 왔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건물과 건물사이. 그 사이에서 신음소리가 들린다는 것이었다.

얼핏 한 건물인 것처럼도 보일만큼 다닥다닥 붙여 지은 두 모텔 사이. 너비 50센티도 안되어 보이는 그 공간은 불빛 하나 없는 시커먼 암흑뿐이었고, 뭔가 살아있는 생명체가 그 안에 있을 것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을만큼 그곳에서는 불길하고 또 불결한 냄새가 났다. 같이 출동한 선임은 말없이 내 등을 떠밀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플래시 하나만을 의지해 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을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는 버려진 쓰레기들이 가득했다. 과자 봉지들, 수북한 담배꽁초, 피 묻은 생리대.. 내 발은 그곳으로 푹푹 꺼져 들어갔고 그럴 때마다 다시 이 어두운 곳을 빠져 나갈 수 없을거라는 공포감에 머리가 쭈뼛쭈뼛 곤두섰다. 하지만 신고자의 으름장과는 달리 플래시 불빛이 닿는 저 끝까지에도 살아있거나 죽어있는 것은 보이지 않았고. 나는 내친김에 건물 반대편까지 들어가 보자는 생각에 좀 더 속도를 내다보니 발밑에 뭔가 물컹한게 밟혔다. 거기에는 커다란 폐장판이 돌돌 말려 버려져 있었다. 나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저 건물의 옥상.

나는 그곳을 올려다보며 나는 과연 저 곳에서 사람이 떨어진다면 살 수가 있을지를 가만히 가늠했다. 그리고 만약 죽었다면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지에 대해서도. ,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시선을 거두고 폐장판을 향해 몸을 숙였다. 어찌되었든, 죽어있을지 모르는 이 사람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는 것도, 생사를 확인하는 것도 내가 해야 할 몫이었다. 나는 플래시를 입으로 물고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어 양손에 꼈다. 그리고 크게 소리쳤다.

 

이봐요. 경찰입니다.

 

나는 속으로 간절히 소망했다.

제발 움직여라..

 

나의 외침과 소망에도 그 것.. 또는 그 사람에게 움직임은 없었고. 그렇지만, 짧은 현장경험으로도 나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살아있으며 오히려 한치의 미동도 하지 않으려 격렬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다시한번 크게 소리쳤다.

 

여긴 사유지입니다. 이곳에 계시는건 무단 침입죄에 해당됩니다. 어서 나와 보세요.

 

나의 외침에 분명 그것은 움찔하는 기색이 보였고, 내가 장갑을 낀 손으로 그 얼굴이 있음직한 데를 움켜쥐자 그 미지의 인물은 마침내 장판 아래로 빼꼼이 얼굴을 내밀었다.

 

덥수룩한 수염.

포식자를 만난 초식동물인 듯 겁을 잔뜩 집어먹어 둥글게 치켜 뜬 그 두눈.

 

그곳에는 그날 도서관에서 사라졌던 그가 들어 있었다.

그는 이불처럼 둘둘 말아 덮었던 장판 속에서 번데기에서 성충이 나오듯 바들바들 떨며 힘겹게 기어 나왔다. 그리고 그것에서 몸을 다 뽑아내자 그는 다시 안에다 팔을 집어넣고 자기 몸만한 등산가방을 또 하나 낑낑대며 끄집어냈다. 삼 년만이었던가..

그 가방은 이제 어깨끈이 둘 다 끊어져 있었고 군데군데 뚫린 구멍을 청테이프로 덕지덕지 기운게 이미 가방으로서는 수명이 끝이 나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컵라면과 빵봉지.. 그리고 그의 것으로 보이는 똥무더기..

 

이 사람이.. 빨리 안 일어나!!!

멀리서 관망만 하던 선임 파트너가 내 발아래에 꿈틀대는 것이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이라는걸 마침내 눈치를 챈건지 어느새 내 뒤에까지 몸을 비집고 들어와 욕설이 섞인 고함을 버럭버럭 질러대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서둘러 일어나 가방을 들어 메려고 했지만 번번이 풀썩 풀썩 넘어지는게 이제 자기 몸을 가누는 것도 그에게는 힘들어진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그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다 두 손으로 그의 가방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는 입을 쩍 벌리며 무언가 말하려는듯 했지만 그곳에서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꼼짝을 않자 이번엔 그가 말 대신 필사적으로 손짓발짓을 하며 가방을 돌려달라고 애원했고, 나는 그를 못 알아들은 척 가방을 어깨에 울러 메고 윽박지르는걸 멈추지 않는 선임을 밀쳐내며 밖으로 빠져나가버렸다. 그러자 잠시 후 눈물과 콧물, 그리고 침이 얼굴과 수염에 온통 범벅이 된 그가 간신히 바깥으로 기어 나왔고, 그런 그의 앞에다 나는 조심스럽게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는 몸을 데굴 굴려 그 가방을 온몸으로 꼭 끌어안았다.

 

이제 원래는 무슨 색이었는지도 모르게 된 그의 등산점퍼.

밑창이 부서져 나가던 등산화 대신 그의 발을 겹겹이 감싼 검은 비닐봉지.

 

그의 머리는 이제 반백이 아니라 완연한 백발이었고, 그의 수염은 같은 색으로 길게 자라 목젖을 덮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광대뼈가 잡힐듯 튀어나와 백골처럼 말라붙어 있었고, 흰자위는 노랗게 익어있었으며 수돗물에 박박 문질러대던 그 하얀 얼굴 역시도 이제는 시커멓게 죽어있었다.

그는 어쩌면 자기 몸보다 더 커 보이는 가방을 껴안고 다시 어두운 그곳으로 기어들어가려고 필사적이었고, 선임은 매번 그런 그의 목덜미를 잡아 거칠게 끌어냈다. 내가 후레시 하나에만 의지해 탐색을 하는 동안 저 바깥에서 숨어서는 추이만 살피던 선임은 어둠 속에서 꿈틀대던 그것이 참혹하게 썩어가는 변사체도, 피투성이로 신음하는 범죄의 피해자도,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낸 짐승도 아닌, 겁먹고 연약한 노숙자라는 것을 알고는 백팔십도 돌변해 있었다. 선임과 민원인은 육두문자를 써가며 그를 위협했고, 당장 이곳에서 떠나라고 소리 지르며 결국은 일어서지도 않은 그의 목덜미를 잡아 바닥에다 거세게 패대기쳤다. 그는 그 거친 손에 그렇게 질질 끌려 다니면서도 그 안에 무언가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어떤 것이 든 양 악착같이 그 가방을 놓지 않으려했는데, 나는 이미, 그가 그토록 놓기 싫어하는 그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이제 그는 자신은 다시 원래의 곳으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걸 마침내 알게 된 건지 끊어진 가방끈을 두 손에 꼭 쥐고는 달달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느다란 그의 양 다리. 그리고 가방끈에 이어진 그의 양팔은 가을철 벼 끝에 앉은 방아깨비처럼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저걸 어서 내 건물에서 치워 달라는듯 신고자는 문신으로 지저분한 팔짱을 풀지 않고선 인상을 한껏 쓰고 있었고, 언제 모였는지 신기한 걸 발견한 듯 주위를 사람들이 빙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자고 선임을 설득했고, 파트너는 그런 내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곳곳에 들려있는 핸드폰 카메라가 마음에 걸렸는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의 가방을 뺏어 순찰차 뒷자리에 던져 넣었고, 그는 마치 홀린듯 가방을 따라 순찰차를 탔다. 그렇게 그를 태우고 찾아간 병원 응급실에서 나는 그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물었지만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얼굴 역시도.

 

나는 그의 엄지손가락을 억지로 집어 지문을 조회해보았지만 역시 그의 신분은 이미 주민등록말소 상태였다. 병원에서는 그를 받지 못하겠다는 통보를 했고,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를 다시 순찰차에 태워 좀 더 큰 병원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병원에서도 그는 병상에 누울 수가 없었다. 환자가 너무 많아서 병상이 모자란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밤새 피곤에 쩐 그 간호사의 얼굴에다 대고 고집을 계속 피우는 것도 할 짓은 아닌듯해 이번에도 우린 말없이 돌아서야만 했다. 나는 순찰차를 몰고 다른 병원이나 노숙인 보호소를 수소문하며 이곳저곳을 다녔지만 그를 받아주겠다는 병원은 나타나지 않았고, 노숙인 보호소마저 시간이 늦어 등록이 안된다는 이유로 그를 거부하고야 말았다. 그는 언제부턴가 가방을 꼭 껴안은 그대로 깊은 잠이 들어있었고, 조수석을 돌아보니 선임의 인내심은 거의 한계에 달해 있었다. 별수 없이 나는 차로 한 시간 거리의 시립의료원으로 핸들을 돌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곳 담당자와 언성을 높이며 꽤 오랫동안 싸운 끝에야 그의 진료 허가를 받아낼 수가 있었다. 나는 순찰차로 돌아와 잠든 그를 깨웠지만 그는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았다. 나는 할수 없이 억지로라도 그를 끄집어내려 했지만 잠이 들었든 정신을 잃었든 그 커다란 가방과 한 몸이 되어있는 그를 끄집어 내는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장정 네 명이 낑낑대며 가방과 함께 그를 병상으로 옮겼고, 그렇게 잠이 든 채 2층의 행려병동으로 옮겨지는 그 모습이 내가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며칠 후.

나는 그의 죽음을 기자라는 사람에게서 듣게 되었다.